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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애송 시

이 하찮은 가치

로잔나 2024. 11. 23. 12:56

 

 

 

 

이 하찮은 가치    - 김용택 -

 

 

 

 

 

 

 

 

이 하찮은 가치

 

11월이다.

텅 빈 들 끝,

산 아래 작은 마을이 있다.

어둠이 온다.

몇개의 마을을 지나는 동안

지나온 마을보다

다음에 만난 마을이 더 어둡다.

그리고 불빛이 살아나면

눈물이 고이는 산을 본다.

어머니가 있을 테니까, 아버지도 있고,

소들이 외양간에서

마른풀로 만든 소죽을 먹고,

등 시린 잉걸불 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며

고구마가 익는다.

비가 오려나보다.

차는 빨리도 달린다. 비와

낯선 마을들,

백양나무 흰 몸이

흔들리면서 불 꺼진 차창에 조용히 묻히는

이 저녁

지금 이렇게 아내가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런 까닭 없이

남은 생과 하물며

지나온 삶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비밀도 없어졌다.

나는 비로서 내 형제와 이웃들과 산비탈을 내려와

마을로 어둑어둑 걸어들어가는 전봇대들과

덧붙일 것 없는 그 모든 것들에게

이렇게 외롭지 않다.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이 하찮은, 이유가 있을 리 없는

이 무한한 가치로

그리고 모자라지 않으니 남을 리 없는

그 많은 시간들을 새롭게 만들어준, 그리하여

모든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사랑이 이렇게

외롭지 않게 되었다.

 

 

* 향수 이동원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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