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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노년 - 박노해 -
가혹한 노년
인생이 길어졌다
아니
수명이 길어졌다
시간이 짧아 초조하다
시간이 길어 불안하다
인생은 짧고, 노년은 길다
삶이 이리 길 줄 알았더라면,
이리 오래 살 줄 알았더라면,
다르게 배우고 다르게 일하고
다르게 살아왔을 텐데
한여름 매미 울음처럼 지나갈
명성과 지위와 재산을 쌓느라
푸르른 절정의 젊음과 바꿔왔으니
남은 건 버석한 껍질뿐이니
단념이 아닌 체념으로
자긍이 아닌 자만으로
아량이 아닌 아집으로
늙음은 새로운 죄목으로
젊음의 법정에 세워져
처형되기 직전이니
한 생의 노고와 성취가
부정되고 조롱받고 냉대받는
죄가 된 늙음이여
가혹한 노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