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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애송 시

10월

로잔나 2023. 10. 3. 19:38

 

 

 

 

10월      - 기형도 -

 

 

 

 

10월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 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이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을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비명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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