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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애송 시

가을 노트

로잔나 2023. 10. 10. 09:10

 

 

 

 

가을 노트      - 문정희 -

 

 

 

 

 

 


가을 노트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 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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