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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애송 시

가을이 깊어지면

로잔나 2023. 10. 27. 07:27

 

 

 

 

가을이 깊어지면         - 박고은 -

 

 

 

 

 

가을이 깊어지면

 

온통 추상에 젖은 산천
가을이 갈빛으로 깊어지면
바람은 또 얼마나 꿈꾸며 가는가
무수히 계절을 밟고 왔을 바람은



텅 비워서 가득찬 풍요
올 맑은 사유의 눈을 떠서
온 누리 더불어 여물고 싶음이여
시떫은 젊음은 결 삭고
비린 욕망은 단물이 들어
한 알 홍시로 무르익고 싶다



여기저기서 우수수 지는 것들
나이만큼 가슴 속에 지는 소리
섧게 지는 낙과를 주워
그 의미를 만져 보고
천심 묻은 영원의 뜰에 두고 싶다



끝내 모든 것이 떠나고 잃는대도
카랑한 정신과 내 안에 사랑만은 남겨
연륜의 강기슭 갈대를 흔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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