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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그네 - 박노해 -
가을 나그네
지금쯤 물든 감 잎사귀 하나 둘 떨어지고
발간 등불 같은 감들이 허공에 환하겠다
지금쯤 가을볕에 남몰래 익어온 꽃씨들이
토옥 톡 터져 멀리멀리 굴러가겠다
지금쯤 장날 저녁이라 집들마다 밥상에 모여
골목길엔 생선 굽는 냄새가 흠흠하겠다
지금쯤 삭발머리 한 빈 들은 흰 서리를 쓴 채
허전하고 표표한 미소로 깊은숨을 쉬겠다
지금쯤 말갛게 핀 들국화도 소슬바람에 흔들리며
쌀쌀히 시린 향기 날리겠다
지금쯤 햇살 좋은 창가게 빈 의자 하나
먼 길 떠난 나를 그리며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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