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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애송 시

가을 나그네

로잔나 2023. 11. 25. 08:01

 

 

 

 

가을 나그네     - 박노해 -

 

 

 

 

 

 

 

가을 나그네

 

지금쯤 물든 감 잎사귀 하나 둘 떨어지고

발간 등불 같은 감들이 허공에 환하겠다

 

 

지금쯤 가을볕에 남몰래 익어온 꽃씨들이

토옥 톡 터져 멀리멀리 굴러가겠다

 

 

지금쯤 장날 저녁이라 집들마다 밥상에 모여

골목길엔 생선 굽는 냄새가 흠흠하겠다

 

 

지금쯤 삭발머리 한 빈 들은 흰 서리를 쓴 채

허전하고 표표한 미소로 깊은숨을 쉬겠다

 

 

지금쯤 말갛게 핀 들국화도 소슬바람에 흔들리며

쌀쌀히 시린 향기 날리겠다

 

 

지금쯤 햇살 좋은 창가게 빈 의자 하나

먼 길 떠난 나를 그리며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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