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위기 - 이춘재 - 이 계절의 위기 모두가 빠져나간 빈 자리에 급하게 돌아가던 행동이 정지되고 갈길을 늦추는 풀어진 시간속에 던져진 내 모습과 마주한다 헛된 체면 의식의 창을 내리고 찻잔 끝에서 묻어나는 막연한 그리움이 떨어지는 낙엽으로 그려지는 이 아침의 풍경 조각으로 일어서는 시린 기억 가시로 찔려오는 아픔을 경험케한 피우지 못해 아름다운 내 첫사랑 작은 아픔에도 신음하던 순수의 감성 질긴 풍상의 세월만큼 뭉실해진 지금도 다듬지 않은 야생화로내 가슴에 상라있다 이제 뜨거워 견딜수 없었던 날들을 불어오는 바람으로 식히며 나와의 만남을 갈망해온 이 가을 데이트에 첫 연인이 되고 싶다.
이니스프리의 호도 - 예이츠 - 이니스프리의 호도 이제 나는 가련다, 이니스프리로 가련다 거기 진흙과 나뭇가지로 작은 집 짓고 아홉 이랑의 콩밭 갈며 꿀벌도 치며 벌소리 잉잉대는 숲속에 홀로 살리라. 그러면 거기 평화가 있겠지. 안개 낀 아침부터 귀뚜라미 우는 저녁 때까지 그곳은 밤중조차 훤하고 낮은 보라빛 저녁에는 홍방울새 가득히 날고. 이제 나는 가련다, 밤이나 낮이나 기슭에 나직이 호숫물 찰삭이는 소리 가로에서나 회색 포도 위에서나 내 가슴 속 깊이 그 소리만 들리누나.
빛나는 별이여 - 키이츠 - 빛나는 별이여 빛나는 별이여, 나 너처럼 변함없는 존재이길 바라노라 - 너처럼 홀로 빛나면서 밤하늘에 높이 걸려 자연계와 잠 잊고 정진하는 은둔자 되어 인간 세계 기슭 청결히 씻어주는 출렁이는 저 바다 물결을 사제다운 근면함을 영원히 뜬 눈으로 지켜보고자 함이 아니고 또한 쓸쓸한 벌판에 사뿐이 내린 백설의 새 단장을 지켜보잠도 아니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 다만 나는 보다 더 한결같이, 보다 더 변함없이 내 아름다운 님의 무르익은 젖가슴 베게 삼아 그 보드라운 오르내림을 영원히 느끼면서 감미로운 설레임 속에 영원히 잠깨어 내 님의 고운 숨결 들으며 언제가지나, 언제까지나 영원토록 살고자 함이니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나 여기에 아련히 숨을 거두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