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뽑기 [하청호] 풀을 뽑는다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다. 흙 또한 뿌리를 움켜쥐고 있다. 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 호미 날이 칼 빛으로 빛난다. 풀은 작은 씨앗 몇 개를 몰래 구덩이에 던져 놓는다. 대지의 품속에선 그들도 생명체 * 하청호 ( 1943년 ~) 시인 잡초란 무엇인가.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그것은 "희망하지 않은 장소에 생육하는 초본이나 목본성 식물" 을 총칭하는 말이다. 인간은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잡초를 제거해야만 한다. 잡초는 인간의 목적에 위배되는 암적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규정은 지나치게 '인간본위' 다. 잡초의 입장에 서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누가 그들을 '죽어야 하는 존재' 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겐 그들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만물의 ..
누가 누가 잠자나 [목일신] 넓고 넓은 밤하늘엔 누가 누가 잠자나 하늘나라 아기별이 깜빡깜빡 잠자지. 깊고 깊은 숲 속에선 누가 누가 잠자나 산새 들새 모여앉아 꼬빡꼬빡 잠자지. 포근포근 엄마 품엔 누가 누가 잠자나 우리아기 예쁜 아기 새근새근 잠자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엄마 품' * 목일신 ( 1914년 ~ 1986년) 아동문학가 목일신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일본 간사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다. 그이가 전주 신흥중학교 (5년제) 1학년 때 쓴 는 자장가로 널리 알려졌다. 이미 고흥보통학교 5학년 때 "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라고 시작하는 를 발표해 문재를 보인 그이는 15세 때 (1929)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 16세 때 (1930) 조선일보 신춘문예..
하느님에게 [박두순] 때맞춰 비를 내리시고 동네 골목길을 청소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가슴아픈 일이 있어요. 개미네 집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개미네 마을은 그냥 두셔요. 구석에 사는 것만 해도 불쌍하잖아요 가끔 굶는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우리 주위에 가득 찬 하느님과의 '대화' * 박두순 (1950년 ~ ) 시인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기도를 한다. 아버지가 근엄하게 주기도문을 외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 .," 그러자 아들이 재빨리 덧붙인다. " 일용할 버터도 주옵시고 . . .. ' 하느님의 입장에선 누구의 기도가 사랑스러울까? 이 시의 화자도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고 있다. 그는 '일용할 양식' 에 이어 '버터' 까지 달라고 했던 아들처럼 '때맞..
손을 기다리는 건 [신형건] 손을 기다리는 건 어제 새로 깎은 연필, 내방문의 손잡이, 손을 기다리는 건 엘리베이터의 9층 버튼, 칠판 아래 분필가루투성이 지우개, 때가 꼬질꼬질한 손수건,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책상 틈바구니에 들어간 30센티미터 뿔자,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퍼즐 조각 하나, 정말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건 손, 꼬옥 잡아 줄 또 하나의 손. 손과 손 맞잡으면 평화가 꽃피죠 * 신형건 ( 1965년 ~) 시인 방정환, 윤석중, 이원수, 강소천, 마해송 등의 1세대가 아동문학의 불모지를 개척했다면, 어효선, 박경용, 김구연, 하청호, 노원호 등으로 두텁게 이어지는 2세대는 씨를 뿌렸다. 아동문학의 인적 자원은 풍부해졌다. 거기에 김소월, 백석, 전지용, 윤동주, 박목월, 오규원, 최승호,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