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속의 자동차 [오규원] 뿌리에서 나뭇잎까지 밤낮없이 물을 공급하는 나무 나무 속의 작고작은 식수 공급차들 뿌리 끝에서 지하수를 퍼 올려 물탱크 가득 채우고 뿌리로 줄기로 마지막 잎까지 꼬리를 물고 달리고 있는 나무 속의 그 작고작은 식수 공급차들 그 작은 차 한 대의 물탱크 속에는 몇 방울의 물 몇 방을의 물이 실려 있을까 실려서 출렁거리며 가고 있을까 그 작은 식수 공급차를 기다리며 가지와 잎들이 들고 있는 물통은 또 얼마만할까 물을 기다리는 가지와 잎 . . .나무는 '작은 우주' * 오규원 ( 1941년~ 2007년) 시인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 본다" 생전에도 폐기종으로 고통받았던 한 시인은 오랫동안 공기 좋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
산 너머 저쪽 [이문구]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싸움도 아픔도 왕따도 없는 곳 . . . 그곳에 가고 싶다 * 이문구 (1941년 ~2003년) 소설가 . 출판편집인 이문구는 본디 소설가다. 호는 명천 (鳴川)이다. 오래 묵은 농경유림 (農耕儒林)의 삶과 해체 위기에 놓인 농촌 현실을 걸쭉한 충청도 토박이말로 풀어낸 과 연작소설을 읽으며 감동에 젖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한국놈덜은 지겟다리 자손두 동네 이장만 되면 금방 내 관청 편이 된다는 거"와 같은 충청도 사투리에 담긴 풍자는 통렬하다.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62세로 세상을 뜨며, "한 세상 고맙게 잘 살다 여한 없이 가니 내 죽거든 화장해 뿌려 아무 흔적..
꽃씨와 도둑 [피천득]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가진 건 꽃과 책뿐. . .도둑이 깜짝 놀랐네 * 피천득 ( 1910년 ~2007년) 작가 이 시의 화자는 도둑이다. 도둑이란 초대받지 못한 자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방문은 그의 몫이다. 이 시의 화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방문한 집에는 훔칠 게 없다. 마당엔 꽃이 만발하고 방안엔 책이 가득하다. 그리곤 그만이다 ! 어쩌겠는가. 가을에 다시 와서 꽃씨나 가져갈밖에. 이시의 저자 금아 피천득 선생은 1910년 5월에 태어나 2007년 5월에 세상을 뜨기까지 우리와 함께 했다. 이 기간에 그는 수필 의 저자로 , 또 셰익스피어 소네트 번역자로 그리고 아름다운 서정시를 생산해낸 시인으로 우..
비 오는 날 [임석재] 조록조록 조록조록 비가 내리네. 나가 놀까 말까 하늘만 보네. 쪼록쪼록 쪼록쪼록 비가 막 오네. 창수네 집 갈래도 갈 수가 없네. 주룩주룩 주룩주룩 비가 더 오네. 찾아오는 친구가 하나도 없네. 쭈룩쭈룩 쭈룩쭈룩 비가 오는데 누나 옆에 앉아서 공부나 하자. 여러가지 얼굴을 가진 비 . . .소년을 집에 가뒀네 * 임석재 ( 1903년 ~ 1998년) 민속학자 비에게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진 켈리가 나오는 영화 (Singin' in the Rain)을 떠올려 보라. '사랑은 비를 타고' 오고 사랑에 빠진 남자는 빗속에서 노래하고 춤을 춘다. 비가 오면 봄의 초본식물들은 키가 쑥쑥 자라고, 버섯은 자라나 포자를 퍼뜨리고, 달팽이들은 사랑을 나눈다. 태양의 업적들이 과대평가된 반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