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 애송 시
봉숭아 꽃물
로잔나
2024. 8. 5. 20:38
봉숭아 꽃물 - 박노해 -
봉숭아 꽃물
그녀의 가는 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일 때면
나는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그녀가 붉은 꽃물이 든
손톱을 깎아 나갈 때면
나는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그녀의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온달이 반달이 되고
반달이 초승달이 되어
아스라이 떠 있을 때면
나는 가을 내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봉숭아 꽃물이 사라지고
희미한 초승달이 질 때까지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라면
나는 그만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마지막 잎새처럼
뛰어내리고만 싶었습니다
* 박은옥.정태춘 – 봉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