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 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 이고져 . . . .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김현승 (1913년~1975년) 시인
이 시는 1957년에 펴낸 김현승의 첫 시집 '김현승 시초'에 실려있다.
시집의 장정을 서정주 시인이 맡았다고 되어 있고, 가격은 육백환이라고 적혀 있다.
시인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를 주선하여 준 서정주 시백의 우의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자서에 썼다.
서정주 시인은 김현승 시인에 대해 "사람 사이의 정 (情)에 철저했던 그는 정의감을 큰 것이던 작은 것이건 고수하는
데서도 철저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의 고독(孤獨)의 원인일 것이다" 라고 평가해 친근한 사이임을 자랑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참혹한 슬픔을 노래한 시들은 많다.
김광균의 시 '은수저'가 그렇고, 정지용의 시 '유리창'이 그렇다.
김광균은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가 앉던 밥상에 한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라고 썼고,
정지용은 "고운 폐 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썼다.
아들을 잃고 난 후 창작한 것으로 알려진 시 '눈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그 슬픔을 넘어선다.
"들이라 하올제" 의 대상이나 '당신'은 그가 신앙한 절대자였다.
그는 눈물이야말로 한 점 생명의 씨앗과도 같고, 더러움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순금처럼 지나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웃음'보다는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눈물'을 귀하게 보았다.
눈물의 참회 이후 인간이 지니게 될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옹호했다.
이 시가 기독교적 신앙시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가 정작 염원한 것은 더 심오한 가치였다.
그는 스스로 밝히길 "나는 또한 신앙에 순응하기만 하는 시인은 아니라"라며 "떳떳하고 참되고 올바른 인간정신을 나의 시에 스며들게 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느낀다"고 했다.
눈물이 너무 흔해서 아무래도 천국엘 못 갈 것 같다고 한 김현승 시인의 자화상은 어떠했을까.
"내 목이 가늘어 회의에 기울기 좋고" . "연애엔 아주 실망(失望)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싸특하진 않으나,/
신앙과 이웃들에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 ('자화상')라고 써 본인의 내.외향적인 기질의 근사치를 내놓았다.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김현승 시인처럼 고독과 슬픔을 지독하게 노래한 시인도 드물다.
'싸늘한 증류수의 시대'를 살다간 그에게 고도과 슬픔과 뜨거운 눈물은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었다.
"슬픔은 나를/목욕시켜준다./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준다"며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고 썼을 정도로.
숭전대학교 (현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기도 중 쓰러진 뒤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의 옹호자였던 시인은 영혼의 옷마저 벗고 우리 곁을 떠났다. - 문태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