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나 2022. 1. 26. 11:16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 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일러스트- 잠산

 

 

 

* 함민복 ( 1962년 ~) 시인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生) 과 견주어 보아도// 시(詩)는 삶의 사족 (蛇足)에 불과" ('詩') 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세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 (' 자본주의의 사연') 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교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것이 아니라 "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 ( '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 " (승리호의 봄') 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 부드러움의 시학' 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다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 문태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