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나 2022. 5. 3. 08:00

 

 

옹달샘

 

[한명순]

 

조그만 손거울

숨겨 두고

 

 

하늘이 날마다

들여다본다.

 

 

산속에 숨겨둔

옹달샘 거울

 

 

가끔씩 달도

보고 간다.

 

 

 

일러스트 - 양혜원

 

 

 

하늘이 감춰둔 거울

 

 

*  한명순 (1953년 ~) 아동문학가 

 

한명순은 인천에서 태어난 아동문학가다. 1990년 아동문예신인상에, 다시 1995년 눈높이 아동문학상에 동시가 각각

당선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 시인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동물과 나무와 풀들을 의인화해서 대상 세계에 접근하는 

시를 써왔다. 그동안 동시집으로 <<하얀 곰 인형>>, <<콜록콜록 내 마음은 지금 0'C>>, <<좋아하고 있나봐>> 등을

펴냈다. 

한명순의 시 세계는 대체적으로 자연친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옹달샘>에서도 그 흔적이 엿보인다. 

'옹달샘'은 하늘이 산 속에 감춰둔 거울이다. 맑고 고요한 이것은 시인의 작명법에 따르자면 "작은 손거울",

즉 크고 깊은 것이 제 속에 감춘 미시 - 우주다. 옹달샘이나 우물물, 혹은 맑은 물을 거울로 상상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최치원은 강물을 거울로 상상해서 " 거울 속 인가는 푸른 봉우리와 마주했네,/ 외로운 돛단배는 바람 싣고 어디로 가는가" 고 노래했다. 

윤동주는 <자화상>에서 "논가 외딴 우물"을 거울삼아 제 얼굴을 비춰보고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 간다고 썼다. 옹달샘은 큰물로 나아가는 작은 시작의 자리다. 

작은 물은 마침내 큰물을 이루고 , 약한 물은 끝내 세상의 굳센 것들을 이긴다.

그래서 노자는 물의 덕(德)을 찬양하며 " 가장 높은 도는 물과 같다"고 썼다.

우리는 심산 (深山)의 정일 (靜逸)에 감싸인 '옹달샘'에서 고요의 성찰적 순간과 만난다. 

소음과 혼탁에 지친 범속한 이가 문득 천정해지는 느낌을 갖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세속을 피해 산 속에 숨은 천정도량과 같이 맑은 물과 더불어 고요를 안고 숨어 있는 '옹달샘' .  이 고요는 비활동성의 

결과가 아니라 텅 빈 충일, 혹은 자기심화의 표징이다.

'옹달샘'은 외따로 있지만 만물에게 자기 성찰의 방법적 도구로 쓰인다. 그러기에 낮엔 하늘이 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

밤엔 달이 들여다보고 간다. 사는 일이 고달프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홀연히 찾아가 안 보이는 제 속내를 비춰도 보고 , 더러는 맑은 물로 시끄러운 속을 달랠 수 있는 그런 청정도량을 하나 갖고 싶지 않으신가.

- 정석주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