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 애송 시

니체를 읽는 밤

로잔나 2022. 12. 12. 21:59

 

 

 

니체를 읽는 밤        - 박노해 -

 

 

 

 

 

 

 

 

니체를 읽는 밤   

 

 

산마을 테라스에 앉아

한 달째 니체를 읽는 밤

눈이 내린다

 

 

난롯불에도 하얀 입김이 어리고

아른거리는 검은 활자들 사이로

니체가 쿨럭이며 걸어온다

 

 

그 찬란한 초인의 노래 속에서

흐느낌과 아우성이 울려오고

그 웅혼한 정열의 광채 뒤에서

귀족의 검은 뒷모습이 일렁이는데

 

 

어떻게 니체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민중의 주먹을 치켜들었다

 

 

번쩍 마주친 그의 눈동자,

니체는 이미 병들고 미쳐 있었다

 

 

어떻게 니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가만히 그를 껴안았다

아침 눈길을 걸으며 생각하느니

 

 

그들보다 더 ' 시대의 높이 ' 에 올라서야만

그들이 채운 사슬이 녹아내릴 거라고

그들보다 더 '영원의 시간'에 이어져야만

그들의 빛에 눈먼 눈들이 밝아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