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1장 5절 ~11절
* 아가서 1장 5절 ~11절
본문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어떻게 예뻐했는지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이를 통하여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 당신의 이름을 둔 성도, 바로 우리들을 어떻게 예뻐하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을 말합니다.
" 예루살렘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 같구나."
'게달' 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에게서 난 둘째 아들의 이름으로 , 그가 이룬 민족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유목민인 이들이 광야에서 치는 그 장막은 검은 염소의 털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 게달의 장막 ' 이라고 하면 검고 거칠다는 표현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외모가 이렇게 수려하지 않았습니다.
바람과 태양에 피부가 검게 타고 거칠어져서 보통의 예루살렘 여자들만 못했습니다.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여인중에 가장 예쁘다는 말을 하고 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외모로 사랑했었던 것이 아닙니다. 외모를 말하면 사랑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외모와는 상관없이 그냥 무조건적으로 사랑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러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시고 무조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검게 타도, 거칠어도, 못 배웠어도, 가진 게 없어도, 우리의 어떠함과 전혀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로 인하여서 더러워져도 그래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롬 5:8)
우리의 죄와 허물을 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며 그것을 다루듯 그렇게 아끼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아끼십니다. 악한 것들로부터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당신의 자랑 삼으시고, 위로 삼으시고,
기쁨 삼으시고, 또 영광을 드러낼 자로 그렇게 아끼시며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또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위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 은을 박아 만들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다 주고 싶습니다. 아무리 귀한 것도 아끼지 않습니다.
희생하기까지 주고 싶은 것입니다. 주면서 더 기쁜 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너를 위하여', 곧 우리를 위해서 가장 귀한 것 주기를 원하시고, 또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맨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모든것을 '사람을 위하여' 다 앞서 만들어 놓으시고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장 귀한 아들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속죄의 양으로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또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부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십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서 이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을 때 자존감이 급상승합니다.
자신이 외모가 변변치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게달의 장막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솔로몬의 위장 같다고 말합니다. 최고의 당당함이 뿜어져 나옵니다.
어디서부터 이러한 자존감이 나오는 걸까요?
'솔로몬의 사랑 안에서 ' 자기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가치 기준을 따라 자신을 평가했을 때는 별 볼 일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장 크고 높으신 왕 솔로몬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 그 새로운 정체성 안에서 자존감이 살아났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받는 자임을 인식하게 된다면 , 내가 누군지, 자신의 그 정체성이 새롭게 보이는 겁니다.
'온 우주의 크신 하나님의 자녀', 왕의 사랑을 입은 자;, 천국의 후사,' 이러한 새로운 정체성 안에서 우리의 자존감은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자들입니다. 가장 높으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시듯 우리 자신을 새로운 정체성 안에서 보기를 원합니다.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이런 나를 기뻐하시고 어여삐 여기시고 존귀히 여겨주시는 그 사랑 안에서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기를 세상의 쥐엄 열매를 먹기 위하여 비굴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고백하며 그분께로 기쁘게 달려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