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아가서 3장 1절

로잔나 2023. 1. 25. 12:53

 

 

*  아가서 3장 1절

 

봄에 포도나무 꽃의 향기가 진해지듯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 잘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지만 이 둘은 아직 결혼한 상태가 아니기에 밤까지 계속 하지 못하는 사랑의 한계가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밤에 서로 떨어져 있는 그 잠깐 동안에도 솔로몬을 굉장히 그리워하며 간절히 찾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찾고 또 찾았더니 마침내 만나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을 이처럼 찾아야 합니다. (렘 29:12~13, 신 4:29,

잠 8:17)  성경은 당신을 간절히 찾으면 만나주시겠다 거듭 약속하십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소문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주님을 향해서 간절히 찾아 부르짖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에게 핀잔을 주며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바디매오는 더 큰소리로 간절히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부르짖어 찾은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주시자 바디매오는 눈을 뜨고 새 생명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을 부르짖어가며 간절히 찾고 만나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라고 고백합니다.

둘은 사랑하는 관계지만 부부가 아니기에 밤에는 각 처소로 떨어져야 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첫 사랑에 빠지면 그 설렘과 두근거리는 기쁜 떨림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초보적인 사랑의

관계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계속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처럼 밤만 되면 주님을 떠나 자기 처소,

즉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립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떠나 있을 때 그때가 영적인 밤, 어둠입니다.

이들이 어둠에 있을 때 드러나는 특징은 바로 형제를 미워하고 방황합니다. ( 요일 2:11)

분명히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데도 미워하는 성도가 있고 교회가 싫어지거나 주를 섬기는 사명이 버겁다고

느끼며 또 갈 곳을 알지 못해 방황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 바를 알지 못하면서 계속 헛된 길을 고집하는 것은 밤이 어둡기에 

지혜도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어둠에 있는 동안에는  계속 상하기에 빨리 빛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와 만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밤에 솔로몬애 대한 그리움으로 간절히 찾았지만 찾지 못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우리가 주님을 찾으면 주님이 들으시고 우리를 만나주신다 약속하셨는데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찾았지만 찾지 못합니다. 왜 못 찾았을 까요?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은 침상에서 솔로몬을 찾았습니다.  침상은 힘을 다 빼고 드러눕는 편안한 곳입니다.

솔로몬을 찾긴 찾았지만 침상에서 힘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찾았던 것입니다. 

편안하게 누워 주님을 만나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 중에 때로는 ' 편안한' 신앙생활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쓸 때 서두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평강'과 '편안'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강은 싸우고 승리한 승리자가 누리는 복을 평강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싸우고 승리해야만 누릴 수 있는 평강은 싸우지 않고 힘을 쓰지 않고는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타락한 성도는 그 추구하는 것이 평강이 아니라 편안한 신앙생활, 사명을 위해 신앙을 위해 힘 쓸 일 없는 신앙의 삶을 구합니다. 편안한 침상 신앙은 밤, 어둠으로 그곳에서는 절대로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침상에서 편안하게 간절함 없이 분투하지 않고 눈물의 씨를 뿌리며 수고없이 기쁨의 단을 거두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닌 요행인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깨어있으라' 고 강조합니다.

편안한 침상, 크고 넓은 길에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잠자는 신앙을 깨워 침상에서 내려와 주님을 부르짖어 찾을 때

그 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짊어지시고 좁고 협착한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따라 오라 하신 그 길은 절대 크고 넓은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자꾸 편안한 길을 찾으며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스스로 속지 마시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주님 부르시는 좁고 협착한 길 위해 지금 누워있는 편안한 침상에서 내려와 믿음으로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