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나 2023. 10. 4. 07:43

 

 

 

 

가을에      - 서정주 -

 

 

 

 

 

 

가을에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低俗에 저항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설계도 빛나는 외로운 雁行 
ㅡ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
가을 안행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ㅡ 국화꽃이 있던 자리 -
올해 또 새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寒露는 霜降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매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의 피비린내 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은 또 한번 뒷문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치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해려 사랑할 줄을 아는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