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 애송 시
손에 대한 묵상
로잔나
2023. 11. 15. 11:43
손에 대한 묵상 - 정호승 -
손에 대한 묵상
인생을 돌아다닌 내 더러운 발을 씻을 때
나는 손의 수고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손이 물속에 함께 들어가 발을 씻긴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인생을 견딘 모든 발에 대해서만 감사했습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밥을 먹을 때에도
길을 가다가 두 손에 흰 눈송이를 고요히 받을 때에도
손의 고마움을 고마워하지 못하고
하늘이 주신 거룩한 밥과
겨울의 희고 맑음에 대해서만 감사했습니다
당신이 내 찬 손을 잡을 때에도
내 인생의 야윈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어줄 때에도
당신에 대해서만 감사하고
당신의 손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발을 씻을 때 손은 발을 사랑했습니다
손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손이 되었습니다
하나가 필요할 때 두 개를 움켜쥐어도
손은 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