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마릴리스 - 류시화 -
아마릴리스
오월부터 한 달 남짓 아마릴리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꽃을 그리는 화가
검은 흙에서 초록색 줄기 먼저
그려 올리고
그다음에는 흰 줄무늬 붉은 꽃을
두세 뼘 높이 허공에 칠한다
색들이 흙에서 해방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의무인 양
밤사이 완성한 꽃대와 꽃은
손으로 만지면 물감이 묻어난다
그렇듯,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바닥나는 물감이
자신 안의 어둠으로부터
탈출시켜 주고 싶은 색
아마릴리스는 말하는 듯하다
내 삶에 대해 고백할 것이 있으니,
누군가가 나를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 묻었다
이듬해 봄에야 알았다
그것이 선물이었다는 걸
매장이 아니라 파종이었음을
ERNESTO CORTAZAR - Magic
'현대시 - 애송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에 내가 찾던 것 있었네 (0) | 2025.07.04 |
---|---|
아가미가 없는 인간 (0) | 2025.07.02 |
감꽃 (0) | 2025.06.30 |
우산 (1) | 2025.06.28 |
이별의 길 (1) | 2025.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