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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애송 시

아마릴리스

로잔나 2025. 7. 1. 12:37

 

 

아마릴리스     - 류시화 -

 

 

 

 

 

아마릴리스

 

오월부터 한 달 남짓 아마릴리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꽃을 그리는 화가

검은 흙에서 초록색 줄기 먼저

그려 올리고

그다음에는 흰 줄무늬 붉은 꽃을

두세 뼘 높이 허공에 칠한다

색들이 흙에서 해방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의무인 양

밤사이 완성한 꽃대와 꽃은

손으로 만지면 물감이 묻어난다

 

그렇듯,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바닥나는 물감이

자신 안의 어둠으로부터

탈출시켜 주고 싶은 색

 

아마릴리스는 말하는 듯하다

내 삶에 대해 고백할 것이 있으니,

누군가가 나를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 묻었다

이듬해 봄에야 알았다

그것이 선물이었다는 걸

매장이 아니라 파종이었음을

 

 

ERNESTO CORTAZAR - Ma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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