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의 모델은 23세의 나이로 당시 파리 사교계를 뒤흔들었던 여인이다.
"천사의 교태"를 지녔다는 극찬을 받을만큼 아름다웠던 이 여인의 이름은 바로
'쥘리에르 레카미에'였는데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 최고의 미인'으로 사교계를 지배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다비드가 그린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은
차분하면서도 우아하고, 고요하며 안정된 분위기가 고풍스런 가구와 의상, 고대
로마풍의 머리형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붓자국이 안보일 정도로 매끄러운 색칠과
곡선 보다는 직선을, 인체의 비례 또한 중요하게 여겼던 신고전주의 답게 이상적인
여인상을 그려내고 있다.
단촐한 실내가구와 억제된 색조는 오히려 작품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모습 - 머리에 헤어밴드까지 한 유행의 선구자인 그녀를 범접
할 수 없을만큼 신비스럽고 고귀한 모습으로 그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으니...
그것은
남자들의 찬미와 환호에 익숙했던 레카미에가 수시로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주
변덕을 부리며 진득하게 모델서는것을 참지못했기 때문이었다.
레카미에의 불성실하고 제멋대로인 태도에 다비드는 화가 났고 그때문에 둘의 사이는
틀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다비드의 수제자인 '제라르'에게 초상화를 의뢰한다.
그래서 다비드의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겨지고...
제라르는 레카미에를 우아하고 고결한 여신으로 그린 스승과는 달리 그녀를 한없이
요염하고 애교가 넘치는 여인으로 묘사했다.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는 섹시함을 극대화시킨 것 같고 날씬한 몸매를 따라 흐르
는 드레스의 선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요염하다. 같은 여자, 다른 느낌의 두 그림....
당시엔 레카미에가 입고 있는 이 옷이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여인네들은 이런 얇은 옷차림을 자랑스러워 했고 그 때문에
감기가 들어 폐렴으로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문득 우리나라 여성들이 한
겨울에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