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하는 일 - 류시화 - 봄이 하는 일 부드럽게 하고, 틈새로 내밀고, 물방울 모으고서리 묻은 이마 녹이고움츠렸던 근육 멀리까지 뻗고단단한 겉껍질 부수고아직은 약한 햇빛 뼛속으로 끌어들이고늦눈 대비해 촉의 대담함 자제시키고어린 꽃마다 술 달린 얼굴 가리개 걸어 주고북두칠성의 국자 기울여 비를 내리고울대 약한 새들 노래 연습시키고발목 접질린 철새 엉덩이 때려 떠나게 하고소리 없이 내린 눈 물소리로 흐르게 하고낮의 길이 최대한 늘리고속수무책으로 올라오는 꽃대 길이 계산하고숨겨 둔 물감 전부 꺼내 오고자신 없어 하는 봉오리들 얼굴 쳐들게 하고곤충의 겹눈에서 비늘 벗기고꽃잠 깨워 온몸으로 춤출 준비하고존재할 충분한 이유 찾아내고가진 것 남김없이 사용하고작년과 다른 방향으로 촉수 나아..

밤바다의 세레나데 - 김경희 - 밤바다의 세레나데 내 마음 속 검은 숲밤이 되면 꿈꾸듯 깊어지고짙은 그림자가 수채화처럼 번져넌 파도처럼 들썩인다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빛들이내 눈가에 내려앉아여전히 눈부셔 아파 검붉게 끓어오르는 너를내가 감당할게 심해의 발광하는 생물들은빛을 보호색 삼아자신을 감추며 살아가 새카맣게 고요한 심해수많은 빛 속으로 숨어들어네 검은 숨도 옅어지길 너만을 위한 나의 세레나데귀 기울여 들어줘함께 호흡하고 느끼는 것그 자체로도 넌 빛나니까 별빛을 머금은 파도들 부서지고하얀 거품처럼 사라지겠지만괜찮아 끊임없이 출렁이고 빛나는 우리지고 나면 피는 꽃처럼다시 만날 거니까그렇게 사랑할 거니까 * 최유리 - 밤, 바다

아직은 이른봄 - 류시화 - 아직은 이른봄 나는 아직 어둠이 필요해요 스무 날은 더 많은 밤이 그러니 재촉하지 말아요 어서 눈을 뜨라고 차가운 동굴에서 나와 어서 꽃을 피우라고 아직은 몇 날 동안 더 겹겹이 오므리고 있어야만 해요 얼굴 묻고 더 꿈꾸고 있어야만 내 존재는 아마 겹겹이 파랄지도 축축한 흙 속에서 온 감각을 열고 한 촉의 희망을 기다린 자만이 꽃에 대해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너무 이르게 불러내지 말아요 어서 서리의 문을 열라고 어서 언 가슴을 열라고 * Chopin - Nocturne No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