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모리아는 1925년 3월 4일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인 마르세이유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음악적 기질을 타고난 그의 부친은 전보 배달부였지만 어려서부터 폴 모리아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그의 음악적 소질을 키우기위해 음악공부를 시켰다.
1935년 가족들이 파리로 이주하게 되면서 파리음악원에서 음악 수업을 받았다.
졸업 후 처음에는 우체국일을 보면서 친구들과 조직한 밴드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되고 재즈를 주로 들려주는 클럽과 계약을 맺어 이때부터 인정을 받으며 유럽의 여러 도시를 공연하며 다니게 된다. 영화음악을 하면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데 [Charles Aznavour(샤를르 아즈나브르)]를 비롯한
유명한 샹송 가수들이 폴 모리아가 편곡한 곡을 부르게 되며, 1968년 [Love is Blue]가
대힛트를 하게 되면서 그의 악단이 세계적인 악단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다.
폴 모리아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살려 대규모의 현을 사용하는 한편, 효과적으로 쳄발로를 사용하여 완전히 이색적인 사운드를 창조하여 새 시대의 무드음악이라는 [Easy Listening]의 개척자라고도 불리어졌다. 그의 음악 세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음악을 자신만의 작곡과 편곡으로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수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해내며 사랑을 받아왔다.
그 중 브라질의 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수차례나 브라질을 방문하였고
남미 음악을 유럽에 전파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발표된 곡이
유명한 [Penelope(에게해의 진주)], [El Bimbo(올리브의 목걸이)],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75년 12월 23일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후 그 동안 4번이나 내한공연을 가졌고, 우리의 음악도 여러곡 편곡하여 발표한 바가 있다. 1997년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문화 훈장'을 받았으며, 1998년 일본공연을 끝으로 무대에서 물러나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수많은 악단이 있지만 폴 모리아
처럼 많은 레파토리와 연주활동은 가진 악단은 거의 없으며 그리고 그의 음악이
있는 한[Easy Listening]이라는 무드음악은 항상 우리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