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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웅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주기를 또 꺼내어 짓이긴다.
쟁기와 써레와 달구지를 끌던 소, 두꺼운 혀로 억센 풀을 감아 뜯던 소 , 송아지를 낳아 대학 공부를 시켜주던 소,
추운날 아버지가 덕석을 입혀주던 소, 등을 긁어주면 한없이 유순해지던 소,
코뚜레가 꿰어 있는 소, 우시장에 팔려가는 아침에는 주먹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소...
소에게 들일이 점점 없어지면서 소의 쓸모는 이제 비육에게만 있다지만 소만큼 오랫동안 농가를 살려온 짐승도
드물다. 일하러 갈 땐 강한 무릎으로 불끈 일어서던 소, 뿔이 솟아 있으나 뿔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는 소,.
소의 느린 걸음걸이와 큰 눈과 우직함을 생각해본다.
김기택 시인은 소에 관한 시를 네 편 썼다 .
꾀는 파리를 쫒아내지도 못하는 무력한 소, 무게를 늘리기 위해 강제로 물을 먹인 소,
도살되는 순간 바람이 빠져 나가서 빈 쇠가죽 부대가 되어 버린 소에 대해 썼다.
시집 "소"의 표제작인 이 시는 소에 관한 그의 네 번째 시이다.
전작들이 소의 비극적인 몸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소라는 종(種)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슬픈 시선이 있다.
한마디의 말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만 울음이 유일한 언어인 소.
오직 끔벅거리고만 있는 소의 눈. 우리가 최초에는 가졌을 혹은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내내 바라보았을
그 '순하고 동그란 감옥'인 눈. 당신에게 내뱉으면 눈물이 될 것 같아 속에 가두어 두고 수천만 년 동안 머뭇거린
나의 말 ....
김기택 시인의 시는 무섭도록 정밀한 관찰과 투시를 자랑한다.
대상을 냉정하고도 빠금히 묘사한다. 그는 하등동물의 도태된 본능을 그려내거나 사람의 망가진, 불굴의 육체를 고집스럽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생명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생명의 '원시림'을 복원시켜 놓는다.
시 '신생아2'에서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 하루종일 그 비린내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 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 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라고 그는 노래했다.
이런 시를 한껏 들이쉬면 어지럽고 시끄럽던 머리가 맑아진다. 선홍빛 아가미가 어느새 새로 생겨난다. - 문태준시인-
* 김기택 시인 1957년생으로 시인, 대학교수임
올해 2021년은 기축년( 己丑年)이라서 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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