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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썪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 살찐 볼을 만지는것 같다. 입안에 쑥 냄새가 돈다. 노란 산수유 그늘도 펼쳐진다. 연못가 버들개지도 눈을 뜬다.
볕은 보송보송하다. 옷은 가볍고 걸음은 경쾌하다. 찬없이 따뜻한 밥과 냉잇국 한 그릇을 받고 싶다.
차닥차닥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리던 옛날의 빨래터도 다시 가보고 싶다.
봄! 자연에만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도 그것은 돌아온다. 인심에도 계절이 있다.
정치가 싸움판을 걷어내거나 , 경제가 잘 돌아 보통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훈풍 부는 봄이 왔다고 한다.
넉넉하고 화창하면 봄이다. 그러므로 봄은 우리의 일상에서 제일로 선호하는 비유의 언어이다.
봄에는 게정게정 불평하는 소리가 싹 사라진다. 이 시의 맛은 봄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으로 빗댄 데 있다.
그러나 이 시에 등장하는 봄의 비유로서의 사람은 순박하고 좀 어수룩하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저기서 기웃거리는 것을 좀 보라. 무리에 끼어서 한눈도 팔고 궂은 데서 뒹굴기도 한다.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한량처럼 '나자빠져' 있기도 한다.
느려터졌지만 한판 싸움질도 하는 것을 보니
강팍하니 나름으로는 고집도 센 듯하다, 대체로 떠도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다.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아, 그러나 사람 냄새가 나는 그는 '마침내' 돌아온다.
민주주의 도래처럼, 격전지에서 생환한 용사처럼, 봄의 백성이 되어 꿈에도 못잊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품으로
이성부 [2012년 작고] 시인은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를 지닌 민중시인이다.
"벼는 서로 어루러져/ 기대고 산다. / 햇살 따가울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 아끼고/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라고 쓴 시 "벼"는 민중서정시의 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광주 출신의 그는'80년 광주'를 겪은 죄의식으로 방황을 하다 산(山)에서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
그는 산행을 통해 '처음에 울적하게 막혔던 것이 나중에는 쾌함을 얻는다'라는 퇴계의 글귀에 공감하게 되었다.
고 한다. 지리산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경험으로 '내가 걷는 백두대간' 연작 발표했다.
그가 돌아오고 있다.오늘은 먼 데서 이기고 돌아 오는 봄을 마중 나가자. 들길과 거리와 사람 사는 동네에 그리하여
이 세상에 봄볕 그득할때까지 .
문태준 . 시인
참 오래전 신문에 현대시 100년이라는 제목하에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을 게제한 것을
스크랩 해둔 것을 책장에서 찾았다.
언제가는 다시 볼 줄 알았는데...
세월이 참 많이 흘렀지만 .... 이제사 다시 꺼내 보니 좋은듯 해서 올려본다.
* 이성부 시인을 검색해 보니 2012년에 작고 한것으로 나온다
One fine spring day - Isao Sas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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