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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 . . . . ,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 . . . . ,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 . . . . ,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한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 . . . . ,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 . . . . ,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 . . . . ,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 . . . . ,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 . . . . ,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 . . . . ,
그러나 킥킥 당신
* 허수경 (1964년 ~ ) 시인
'그대' 는 어떻게 '당신' 이 되는가. 허수경 시인은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라고 한다.
'사내' 가 아름다울 때 '당신' 이 되기도 한다. 그 아름다움에 기댈 수 있을 때 '당신' 이 되기도 한다.
부빈다는 것, 기댄다는 것, 그것은 다정 (多情)이고 병 (病)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병자처럼 당신을 묻은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
사실은 슬픔으로 이어진 '살아옴의 상처' 와 ,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을 추억하며 한 병의 맨 술을 마시는
중이리라. 백수광부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훌쩍 건너가 버린 당신!
당신이 먼저 당도해버린 그곳은 나 또한 혼자서 가야 할 먼 집이다. 그러니 남겨진 나는 참혹할밖에.
참혹은 '당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불러 일으키는 총체적 참혹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실연의 참혹, 아버지를 여윈 망부의 참혹, 신념을 잃은 한 시대의 참혹,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죄다 마음에 묻어야 하는 당신들이다.
그런 당신을 웃으면서 울면서 혹은 취해서 부르는 이 시의 언어는 언어 이전이거나 언어 이후다.
단적인 말줄임표와 쉼표,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킥킥' 이라는 의성어에는 ,참혹인 줄 알면서도 참혹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자의 내면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와 당신, 사랑의 마음과 마음의 무덤, 환후와 치병이 '각각 따로'이기에, 당신과 함께했던 세월과 사랑과 상처와 그 상처의 몸이 모두 적요이고 울음이다. 그런 울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 세간의 혼몽을 잘 먹고 잘 노래하는 시인의
지복(至福) 일 터, 이 시는 그 지복의 한 자락을 걸쳐 입고 있다.
허수경 시인은 울음 같은, 비명 같은, 취생몽사 같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을 낸 직후 독일로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1990년대 초반이었고, 시인의 생부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다. 동안 (童顔)에, 대책 없는 맨몸이었다.
고고학을 공부한다 했다. 잘살고 있다고 했다. 당신 . . . 당신이라는 말은 언제 불러도 참 좋다.
그리고 참 참혹하다, 킥킥 당신 . . . , -정끝별.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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