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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零下) 십삼도 (十三度)

영하 (零下) 이십도 (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은 목숨으로

기립 (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 (零上)으로 영상 (零上) 오도 (五度)

영상 (零上) 십삼도 (十三度) 지상(地上) 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일러스트 - 잠산

 

 

 

*  황지우 ( 1952년 ~) 시인. 전 대학교수

 

황지우 시인의 시 '손을 씻는다'를 함께 읽는다. "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 스스럼없이 만졌다" 라고 쓴 시.

한 점 오점 없이  살 수는 없다. 저질러가면서 우리는 산다. 

좌충우돌하면서 난동을 부리면서 ,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시대가 진화해가는 것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가진 자기 반성과 좀 더 나아지려는 희망의 추구 같은 것 때문이다. 

이 시는 솔직하다. 나무는 꼭 나무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헐벗고 무방비이고, 때로는 벌 받고, 간가민가 하는 사람으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라고 중얼중얼할 줄은 아는 사람이다. 

아주 숙맥이거나 속물적이지는  않아서 현재의 환멸을 볼 줄을 아는, 앙가슴이 뛰는 그런 사람.

바깥 세상이 영하인지 영상인지 구별할 줄 알아 드디어 버틸 줄도 거부할 줄도 알게 된 사람.

마침내 싹도 잎도 틔우면서 불쑥 기립하여 봄의 나무가 된 사람.

자력의 운동성을 가진, 스스로를 혁명하는 사람. 자기 몸을 쳐서 바다를 건너가는 새 같은 사람.

의지의 사람. . . 우리는 이런 봄나무를 기다리는 것 이닌가.

황지우 시인은 1980년대를 날카로운 풍자로 노래했다. 그는 1980년대의 독재와 살해와 검열에 맞선 '시의 시국사범' 이었다. 한 대담에서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시대가 우리를 건드렸다"고 표현했는데,

그의 시는 권력의 중증 (重症)을 처절하게 해체하려는 양심이었다.

설령 그가 시 '뼈아픈 후회' 에서 "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 . . )//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라고 써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있지만, 이 혹독한 자기 검열의 고백이 황지우 시의 미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대와의 불화와 선적 (禪的)인 기개를 넘나드는 그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푸릇푸릇한 '방풍 (防風)의

대밭' 이다.                         - 문태준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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