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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가 아프면
[손동연]
송아지가 아프면 온 식구가 다 힘 없제
외양간 등불도 밤내 잠 못 이루제.
토끼라도 병나면 온 식구가 가 앓제
순덕이 큰 눈도 토끼 눈처럼 빨개지제.
동물과 인간, 자연이 하나 돼 살아가는 곳
* 손동연 ( 1955년 ~) 시인
"돼지야, 소야, 토끼야. . . 미안하다./너희들 밥주는 걸 깜빡 잊었구나./ 딱지 치느라 구슬치기 하느라/ 상추랑 고추모도
쫄딱 한 끼 굶겼구나. " (< 미안하다>)
도시 아이들에게 돼지와 소, 토끼가 '미안함' 의 대상일 리가 없다.
돼지와 소, 토끼에게 미안하려면 적어도 그들이 가족이자 친구,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동물과 인간, 자연이 하나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삶이 아니고서는 이런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쉽지 않다.
아마도 손동연 시인을 가슴 아프게 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한때 우리에게 익숙했으나 이제는 망각해져버린 저 자연친화적 세계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뻐꾹리의 아이들'
연작은 이미 여섯 권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하나인 이 시를 보라.
여기에서도 '송아지'와 '토끼' 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다. 송아지가 아프면 온 식구가 다 힘이 없다.
토끼가 병이 나면 온 식구가 함께 앓는다. 송아지와 토끼는 어린 화자의 친구이자 온 식구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경제적 근거다. 삶과 경제는 분리되지 않는다.
'뻐꾹리' 라는 가상의 공간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동물들은 자신들의 분신이다.
그들은 함께 아프고 함께 웃는다.
"들길에서 만났네. 위아래말 아이들./ - 느그 집 송아지 잘 크냐?/ 장터에서 만났네. 위아랫말 어른들. / - 자네 집 소도 안녕하신가? " (<인사말>) 이런 세계에서라면 달리 무슨 인사말이 필요하겠는가.
아이도 어른도 송아지와 소를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소는 ' 안녕하시' 기까지 하다.
들길이든 장터든 사람과 소는 더불어 살아간다.
그들은 '식구; 다. 정감 어린 전라도 사투리로 소를 존대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 손동연의 시는 묘한 서정이 살아 숨 쉰다. "땡볕 불볕에도 모자를 안 쓰시네/ -벼가 타들어간디 나 혼자만 어떻게. . ./ 소낙 장대비에도 우산을 안 쓰시네/
_ 벼가 살아나는디 이런 단빌 어떻게 . . . " (<아부지는 농부라서>)
'농부 - 아부지'는 땡볕에도 모자를 안 쓰고, 장대비에도 우산을 안 쓴다. 아니 , 못 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마음 아닐까.
곧 땡볕과 장대비의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손동연의 시를 기억해볼 일이다.
- 신수정 .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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