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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애송 시

구슬비

로잔나 2022. 4. 21. 07:52

 

 

 

구슬비 

 

[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일러스트 - 윤종태

 

 

우리말의 아름다움, 구절마다  '송송송'

 

 

*  권오순 (1919년 ~1995년 ) 아동문학가

 

어떤 사람에겐 시를 쓰는 것이 자신의 불우를 견디는 힘이 된다. 

이 시를 쓴 권오순의 경우가 그러하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었다.

몸이 불편한 그녀가 택한 길은 시를 쓰는 것.  1933년 <<어린이>>지에 <<하늘과 바다>>가 입선되기까지

그녀는 학교에 가지 않은 채 혼자 집에서 창작에 전념한다.

1937년 <<카톨릭소년>>에 발표된 이후 그녀의 대표작이 된 이 시는 그 과정의 산물이다.

비가 내린다. 싸리잎에도, 거미줄에도, 풀잎에도. 또 꽃잎에도 . 이 비는 장대처럼 쏟아지는 소박비도 아니고,

감질나게 내려앉는 보슬비도 아니다. 

그것은 '포슬포슬' 내린다. 비 내리는 바깥을 마음껏 돌어다녀보지 못한 소녀가 그 비를 바라본다. 

소녀는 비를 맞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소녀에게 비는 다만 영롱한 구슬처럼 반짝일 뿐이다. 비는 '송송송' 내리고 '솔솔솔' 맺힌다.

권오순은 이 시를 통해 우리말 형용어의 외연이 얼마나 넓은지 그 스팩트럼을 화려하게 보여주었다.

싸리잎 위로 비는 '송알송알' 내리고, 거미줄에 비는 '조롱조롱' 맺힌다. 

풀잎에 맺힌 빗방울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우리말의 ㅇ과 ㄹ의 '흘러내리고 튀어 오르는 ' 감각을 극도로 활용한 이 의태어들은 구슬비를 수식하는 형용어로 모자람이 없다.

이 말들이 있는 한 우리말은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 에 두고 싶은 보물과 같다.

시인이 우리말의 정부 (政府)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이야기일까.

"꽃바구니에/ 또그르르. . . / 굴려 보고 싶다 // 옥항아리에 꽂으면/ 하이얀 방울 꽃내음/ 퐁퐁 솟겠다." (<봄 아침 멧새소리>)  청각을 또 다른 감각으로 재현하는 권오순의 재능은 이 시에서도 돋보인다. 

봄날 아침의 멧새소리는 꽃바구니와 수정 쟁반, 그리고 옥항아리와 만나 '퐁퐁' 솟아오르는 '꽃내음'이 된다.

'소리'는 보는것으로부터 더 나아가 급기야 냄새로 전환되기까지 한다.

이런 감각은 평생 '소녀'로 살다간 자의 것이다. 

해방이 된 뒤 단독 월남한 권오순은 재속수녀가 되어 성당에서 세운 고아원의 보모로 봉사하게 된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간 그녀에게 우리가 보인 관심은 충주호 부근의 시비뿐이다.

외롭고 가난한 그녀가 그토록 맑고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깝다. 

시의 나라의 수수께끼다.

- 신수정 .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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