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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바다
[박경종]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람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
초록빛 여울물에 두 발을 담그면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우리 순이 손처럼 간지럼 줘요.
바다에 빠진 몸과 마음, 온통 초록빛으로
* 박경종 ( 1916년 ~ 2006년) 아동문학가
<초록바다>는 인생의 반 너머를 실향민으로 살았던 박경종이 고향인 함경남도 홍원 앞바다를 떠올리면 쓴 동시다.
이 시의 근저에는 떠나와 잃어버린 고향에의 애틋함과 서러움이 녹아 있다.
무엇보다도 <초록바다>는 초록빛 향연을 펼쳐 보이는 동시다.
넓은 초지와 엽록소를 가진 식물의 어린잎들과 플랑크톤과 녹조를 품은 바닷물은 다 초록빛이다.
이 초록은 무상 (無償)으로 주어진 것, 그리고 질 (質)이며 양(量)인 것이다.
아울러 이 초록은 풋것, 즉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신생하는 생명의 표상이다. 시의 화자는 손과 발을 담그고 초록빛
감각의 향연에 참여한다. 시의 화자는 눈으로 촉각으로 만나는 셰계와 하나가 되어 언어화할 수 없는 공감각의 황홀함으로 끌려간다.
이 동시를 읽거나 노래로 부르는 이는 제 몸과 마음이 온통 초록빛에 물드는 경험을 할 것이다.
감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이다. 유령이나 천사는 몸이 없고 따라서 감각도 없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걸러진 셰계에 대한 낱낱의 정보를 뇌에 저장한다.
이렇듯 사람과 세계는 오감을 매개로 접촉하고 소통한다. 생명체는 몸과 몸의 접촉과 소통을 촉진시키는 화학물질 없이는 어떤 진화도 이루지 못한다.
바닷물에서 손은 초록빛 물이 들고 , 물은 발의 촉각 수용기를 자극한다.
손이 초록빛에 물든 것을 보고, 여울물이 신체의 한 부분을 애무하듯 간질이는 걸 느끼며 아이는 탄성을 내지른다.
시의 문면 아래로 숨은 이 탄성은 감각 지각에 새롭게 포착된 초록빛 세계에 대한 놀람과 감동을 압축한다.
박경종은 1933년 조선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동요 <왜가리>가 당선하고, 중학교를 마친 뒤에는 흥원군청에서 일하면서 아동잡지 <<아이들>> 등에 동시를 발표했다.
해방 뒤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51년에 고향을 등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부산 피란시절에 강소천, 이원수, 김영일, 최태호, 윤용하, 임인수등의 예술인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남쪽에서는 주로 상업을 하며 생계를 이으면서도 동요와 동화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떠나온 홍원 앞바다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고 , 남쪽에서 숨을 거둔 그의 생애가 시를 읽는 이의 마음을 애달프게 한다.
- 장석주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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