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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서시 (國土序詩)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맹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디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톻째로 보탤 일이다. * 조태일 시인 (1941년~1999년) 육척거구,고집불통,임전무퇴,대의명분의 시인, '쑥대머리'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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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간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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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피리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리리 * 한하운 시인 (1920년~1975년) 사월이면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초록이 지천으로 팬 보리밭을 지날 적이면 보리피리가 불고 싶어진다. 보리의 싹이 나오기 전의 보릿대를 꺾어 불면 피-ㄹ- 소리가 났다. 보릿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손톱으로 작은 구멍을 내 요령껏 불면 피-ㄹ 닐니리 소리가 나기도 했다. 청보리밭의 소리이자 고향의 소리 피-ㄹ 닐니리, 피-ㄹ 닐니리는 향수의 소리다. 의 시인 한하운. 그의 또다른 이름은 '문둥이'였다. 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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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조지훈 시인 (1920년 ~ 1968년)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하는 ,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본 적이 있다.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 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