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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에 올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문태준 시인. PD (1970년 ~ )
문태준 시인의 시에서는 뜨듯한 여물 냄새가 난다. 느림보 소가 뱃속에 든 구수한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투실한 입모양이 떠오른다. 잘 먹었노라고 낮고 길고 느리게 음매 - 울 것도 같다.
21세기 벽두의 우리 시단에서 그의 시는 '오래된 미래' 다.
찬란한 '극빈(極貧)'과 '수런거리는 뒤란'을 간직한 청정보호구역이다. '시인.평론가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시'로 뽑히기도 했던 이 시는 겹겹의 배경을 거느리고 있다. 수묵의 농담(濃淡)처럼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다.
죽기 직전의 개조개가 삐죽 내밀고 있는 맨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는 상상력의 음역은 웅숭깊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들 아버지의 맨발, 그 부르튼 한평생을 얘기하고 있다. 시를 포착하는 시적 예치와 시안(時眼)의
번뜩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에 제일 나중에 나와, 세상 낮은 곳에서 가장 큰 하중을 견뎌내고서는, 세상으로부터 제일 나중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맨발이다.
맨발로 살다 맨발로 돌아가는 모든 것들은 평속(平俗)한 세파를 화엄적으로 견뎌내는 존재들이다.
길 위에서 태어나 열반에 든 부처가 ,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관 밖으로 내밀어 보여준 두 발에는
천 개의 바퀴살이 하나로 연결시킨 바퀴테와 바퀴통의 형상이 새겨있었다고 한다.
부처는 무량겁 지혜의 형상을,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깥'에서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이 맨발의 움직임은 적막하다.
어물전의 개조개가 무방비로 내놓았다가,"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맨발을 거두어들이는
그 느린 속도에는 죽음이 묻어 있다. 무언가를 잃고 자신의 초라한 움막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맨발'의, 적나라한,
온 궁리를 다한 뒤끝의 거둠이다.
탁발승의 벌거벗은 적멸이요, 개조개 속에 담긴 부처다. '조문'히듯 만져주는 시인의 손길 또한 애잔하다.
개조개가 슬쩍 내보인 맨발에서 천길 바다 밑을 걷고 또 걸었던 성스러운 걸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차디찬 맨발을 만져본 사람에게 이 시의 적막함은 유난하다.
인연이든 시간이든 기적이든 순력(巡歷)을 다했기에 '바깥'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아~'하고 우느 것들을 채워주었기에, 느리고 느리게 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 (<바깥>)! -정끝별 시인 -
Always (로코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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