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편지 [서덕출]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조선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버들잎 우표 삼아 제비에게 쓴 편지 * 서덕출 ( 1906년 ~1940년) 시인. 아동문학가 툴루즈 로트레크, 구본웅, 서덕출, 이 세 예술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물랭루즈의 연인'으로 유명한 로트레크, 시인 이상의 초상화를 그린 구본웅, 그리고 의 서덕출 등은 평생 척추 장애로 고통 받았다. 장애는 그들의 천형이자 예술적 밑바탕이었다. 우리들은 그들을 감히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곱추 예술가들' 이라고 부른다. 1906년 1월 울산에서 태어난 서덕출은 다섯 살 되던 1922년 자신의 집 대청마루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다. 이 다리의 염증이 척..

밤이슬 [이준관] 풀잎 위에 작은 달이 하나 떴습니다. 앵두알처럼 작고 귀여운 달이 하나 떴습니다. 풀벌레들이 어두워할까 봐 풀잎 위에 빨간 달이 하나 몰래 떴습니다. 풀벌레들의 등대가 된 밤이슬 * 이준관 ( 1949년 ~) 시인 시인은 딱히 이름붙일 수 없는 하나의 공간을 그린다. 이 공간은 개별적으로 호명할 수 없는 것들의 장소, 그 익명의 현존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심연이 아니라 세계의 표면, 즉 밤이슬과 풀잎과 풀벌레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밤은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해명되지 않은 여러 위함을 내포한다. 그 세계에서 풀벌레들은 떨며 운다. 풀잎 위에 앉은 이슬은 달빛을 받고 반짝하고 빛을 낸다.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빛의 존재는 어둠이 불러들인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를 지운다. 밤이슬이 앵두알..

잡초 뽑기 [하청호] 풀을 뽑는다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다. 흙 또한 뿌리를 움켜쥐고 있다. 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 호미 날이 칼 빛으로 빛난다. 풀은 작은 씨앗 몇 개를 몰래 구덩이에 던져 놓는다. 대지의 품속에선 그들도 생명체 * 하청호 ( 1943년 ~) 시인 잡초란 무엇인가.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그것은 "희망하지 않은 장소에 생육하는 초본이나 목본성 식물" 을 총칭하는 말이다. 인간은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끊임없이 잡초를 제거해야만 한다. 잡초는 인간의 목적에 위배되는 암적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규정은 지나치게 '인간본위' 다. 잡초의 입장에 서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누가 그들을 '죽어야 하는 존재' 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겐 그들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만물의 ..

누가 누가 잠자나 [목일신] 넓고 넓은 밤하늘엔 누가 누가 잠자나 하늘나라 아기별이 깜빡깜빡 잠자지. 깊고 깊은 숲 속에선 누가 누가 잠자나 산새 들새 모여앉아 꼬빡꼬빡 잠자지. 포근포근 엄마 품엔 누가 누가 잠자나 우리아기 예쁜 아기 새근새근 잠자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엄마 품' * 목일신 ( 1914년 ~ 1986년) 아동문학가 목일신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일본 간사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다. 그이가 전주 신흥중학교 (5년제) 1학년 때 쓴 는 자장가로 널리 알려졌다. 이미 고흥보통학교 5학년 때 "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라고 시작하는 를 발표해 문재를 보인 그이는 15세 때 (1929)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 16세 때 (1930) 조선일보 신춘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