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처럼 - 문정희 - 첼로처럼 하룻밤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매케한 담배 연기 같은 목소리로 허공을 긁고 싶다 기껏해야 줄 몇개로 풍만한 여자의 허리같은 몸통하나로 무수한 별을 떨어뜨리고 싶다 리본 냄새 풍기는 은빛 샌들의 드레스들을, 넥타이 맨 신사들을, 산사의 허세와 속물들을, 일제히 기립시켜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게 하고 싶다 죽은 귀를 잘라버리고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게 하고 싶다 슬픈 사람들의 가슴을 박박 긁어 신록이 돋게 하고 싶다 하룻밤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 HAUSER and Señorita - I Will Always Love You
가시 - 정호승 - 가시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은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 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 * 더원 - 가시
오월 - 피천득 - 오 월 - 피 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를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失了愛情痛告 (득료애정통고실료애정통고)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