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그네
[박목월]
강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南道) 삼백리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1916년 ~1978년) 시인 . 전 대학교수
이 시는 박목월이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펴낸 3인 시집'청록집'(1946)에 실려 있다.
임시 정가 30원의 '청록집'을 발간한 이후 세 명의 걸출한 시인들은 '청록파'로 불리게 되었다.한국 서정시의 큰 산맥을 이룬 이 3인은 모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경주에 살고 있던 박목월을 조지훈이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이 시는 박목월과 조지훈의 각별한 관계에서 태어났다.
'목월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조지훈의 시 '완화삼(玩花杉)에 대한 화답으로 이 시를 썼기 때문이다.
'완화삼'의 "나그네 긴 소매/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저녁 노을이여'의 한 부분인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를 부제로 삼았다.
'완화삼'의 시어인 나그네와 구름과 달과 강마을과 저녁 노을을 그대로 받아서 썼다.
다만 '완화삼'이 나그네의 구슬픈 우수(憂愁)를 더 드러내면서 가야 할 앞길의 정서적 거리를 '물길은 칠백리(七百里)'로 표현했다면, '나그네'에서는 물처럼 바람처럼 걸림 없이 남도 (南道) 삼백리(三百里)'의 길을 표표히 가는 나그네의 심사를
부각시켰다.
이 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접한 최초의 시였다. 외할머니가 벽에 붙여져 있던 이 시를 '가갸거겨'를 배우던 방식으로
흥얼흥얼하는 것을 곁에서 들었다.
그처럼 이 시는 우리말의 가락이 아주 잘 살아 있다.
조지훈은 박목월의 시에 대해 "압운(押韻)이 없는 현대시에도 이렇게 절실한 심운 (心韻)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시를 읽으면 역시 그 평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시를 쓸 때에는 꼭 연필을 깎아 썼다는 박목월, 아이들에게 공책을 사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한지를 묶어 공책을
만들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던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야 한다// 어느 짧은 산(山)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이워싸고') 고 노래한
박목월. 시를 알게 되면서부터 본명 박영종(朴泳鐘) 대신 '목월'이라는 큰 자연의 이름을 스스로 붙였던 그.
식민지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박두진의 말대로 청록파에게 자연은 "온갖 제약을 타개하기 위한 시의 유일한
혈로 (血路)"였는지 모른다. 그 한가운데에 '애달픈 꿈꾸는 사람' 박목월이 있다. - 문태준 . 시인 -
'현대시 100년 - 시인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탄제 (0) | 2021.12.24 |
---|---|
해바라기의 비명 (碑銘) (0) | 2021.12.22 |
추일서정 (秋日抒情) (0) | 2021.12.20 |
철길 (0) | 2021.12.18 |
생명의 서 (書) (0) | 2021.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