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 오빠와 화로

 

[임 화]

 

 

(앞부분 생략)

오빠 . . . . . .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 - 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권련(卷煙)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 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 . . . .

네 몸에선 누에 똥내가 나지 않니 -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어요

천정을 향하여 기어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

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 (永男)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소리와 함께 - 가버리셨어요

 

(중간 부분 생략 )

 

화로는 깨어져도 화(火)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 영남 (永男)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이 더웁습니다

( 이하 생략 )

 

 

 

일러스트 -잠산

 

 

 

 * 임 화  (1908년 ~1953년) 시인. 배우. 문학평론가

 

 

임화는 일제강범기에 사회주의 문학운동을 표방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핵심 멤버로 카프의 서기장을 

지낸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임화는 모던보이였다. 영화 '유랑'과 '혼가'에서 주연을 맞기도 해 '조선의 발렌티노'로 불리었다.

그는 계급주의 문학에 선봉에 서서 카프를 이끌었지만 , 막상 1935년에는 카프 해산계를 직접 내야 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 종로 한청빌딩에 조선문학건설본부라는 간판을 내걸어 좌익 계열 문인들을 규합했다.

그 후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 시는 사건적이고 소설적인 데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소박하고 '된 그대로의 말'을 사용했고, 

노동자들의 낭독에 편한 리듬을 씀으로써 카프문학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단편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사 (製絲)공장 여직공이었다가 이제는 백 장의 봉투를 붙이면 일전을 버는 일을 하는 화자가 오빠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글 형식이다.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봐서 오빠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로에 '오빠' 혹은 '혁명가의 정신'을 빗대어서, 역경 -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지는 - 이 지금 닥쳐왔지만 굴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뜻을 밝혀 놓았다.

임화는 1936년에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다'라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20'에서 '임화'

라는 시를 통해 '아직껏 한국문학사에는 버려둔 무덤이 있다/마른 쑥대머리 무덤/ 그 무덤 벙어리 풀려 열리는 날/

그 무덤 속 해골/ 뚜벅 걸어나오는 날 /임화는 오리라//아름다운 얼굴 다시 오리라 부신 햇살 뿜어 오리라' 라고 써

왕양 (汪洋)한 기상의 소유자였던 그를 추모했다.                   - 문태준 -시인 -

 

 

 

 

'현대시 100년 - 시인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국( 祖國)  (0) 2022.01.08
한 잎의 여자  (0) 2022.01.07
산정묘지 ( 山頂墓地 )  (0) 2022.01.04
황동규 '즐거운 편지  (0) 2022.01.03
서정주 '天冬(동천)'  (0) 2021.12.3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