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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 애송 시

과수원길

로잔나 2022. 5. 7. 13:41

 

 

 

과수원길

 

[박화목]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일러스트 - 윤종태

 

 

* 박화목 ( 1922년 ~2005년 ) 시인 . 아동문학가

 

"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 온다// 둘러 봐야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 보리밭 >).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 <보리밭>.

6. 25때 고향 황해도 해주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박화목 시인은 1952년 피란지에서 이 시를 완성했다.

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시를 보면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뉘 부르는 소리' 의 여운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이주민 정서라고 할까. 월남민 박화목의 많은 시들이 이 향수를 노래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도 같다.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넘어"로 시작되는 <망향>이 그렇고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로 끝나는 <과수원길> 또한 그러하다.

그에게 고향은 시의 근원이다. 익숙한 것들과 갑자기 결별하게 된 자의 애수는 그의 시를 통해 이후 우리 서정시의 또 다른 자양분이 되었다.

동구 밖 과수원 길에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다. 하얀 꽃잎은 눈송이처럼 날리고 꽃 냄새는 솔솔 불어온다.

이 설정만으로도 이미 모종의 감상은 완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화목 시인은 이 '서정의 무대' 에 두 사람을 마저 추가한다.

이들은 연인이어도 좋고 친구여도 상관없다.  실제 시인의 외갓집 근처 과수원 길을 무대로 했다고 알려진 뒷이야기에는 이 두 사람이 시인과 그의 여동생인 것으로 되어 있다.

누구면 어떠랴. 두 사람이면 된다. 그들에겐 말도 필요 없다. 서로 "얼굴 마주보며 생긋" 웃을 수 있는 한 그들은 말의 경계를 넘어선다. 

김공선이 곡을 붙여 가히 국민가요의 반열에 오른 이 시는 60년대 초 정부가 가난한 문인들에게 불하한 불광동 문화촌에서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는 박화목 시인의 정갈하고 고운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유독 맥주를 좋아해 술을 한잔 하는 날이면 고향 해주와 젊은 날 떠돌던 하얼빈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는 그 시인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이제 '먼 옛날의 과수원길'은 우리 모두의 꿈의 무대가 되었다. 

하얀 꽃잎이 지는 날, 누군가와 얼굴 마주 보며 말없이 그 길을 걷 싶다 시의 위력이다. 

- 신수정. 문학평론가 -

 

 

한국인의 애송 동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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