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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엄기원]
조그만 몸에
노오란 털옷을 입은 게
참 귀엽다.
병아리 엄마는
아기들 옷을
잘도 지어 입혔네.
파란 풀밭을 나가 놀때
엄마 눈에 잘 띄라고
노란 옷을 지어 입혔나 봐.
길에 나서도
옷이 촌스러울까 봐
그 귀여운 것들을
멀리서
꼬꼬꼬꼬
달음질시켜 본다.
노오란 털옷 입은 '아기' 가 사랑스러워
* 엄기원 (1937년 ~2006년) 아동문학가
병아리 , 염소, 강아지, 제비... 엄기원 시인의 시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이름들이다.
작고 여리고 귀여운것, 무엇보다도 '아기' 들과 눈높이를 같이할 수 있는 어린 동물들은 그가 가장 선호하는 소재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아기와 염소>만 보더라도 그렇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염소 앞에 갔습니다.// 풀을 뜯던 염소가/ 아기를 보았습니다./ 염소는 아기가 귀여운 모양입니다.//염소는/ 턱밑의 긴 수염을 / 흔들어 보였습니다./ 아기는 끼르르 웃었습니다." (<아기와 염소>)
아기와 염소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아기는 염소를 친구 대하듯 하고 염소 역시 엄마의 마음으로 아기를 바라본다. 그들은 친구이자 모자간이다.
이 동물친화적인 세계는 이 시에서도 빛난다. 병아리들이 꼬꼬꼬 소리내며 떼 지어 몰려다닌다.
누가 저 '노오란 털옷을 입은' 짐승을 미워할 수 있을까. 병아리들은 단순히 하나의 동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병아리에게서 아기를 본다. 이 마음은 엄마의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엄기원 시인은 한 번도 닭을 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닭은 다만 '병아리 엄마' 일 뿐이다.
이 병아리 엄마가 지어준 노란 옷을 입고 병아리들은 파란 풀밭에 나가 논다.
그런데 그 색은 귀엽긴 하지만 조금 촌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 마음을 알아서일까.
병아리 엄마는 '그 귀여운 것들'을 꼬꼬꼬 달음질시켜 빨리 몰고 간다.
'노오란 병아리'를 보고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하기 전에 재빠리 그 어린 것들을 몰고 가는 것이다.
닭이나 사람이나 자식 흉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골목길>이 당선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한 엄기원 시인은 오랜 교직 생활을 통해 간파한 어린이들의 심성을 그들의 시선으로 묘사해낸 시들로
유명하다. 엄마, 문열어!'/ 아기가 대문을 꽝 차면/ 엄마는 얼른 문을 열어 주신다.// '엄마, 배고파!'/ 아기가 소리치면/엄마는 얼른 밥을 차려 주신다.// 아기는 대장/ 엄마는 졸병." (<대장과 졸병>)
이처럼 그의 시에는 아이와 엄마를 둘러싼 사랑과 교감이 흘러넘친다. 졸병이면 어떠랴.
세산 모든 업마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그들은 영원히 아기의 졸병이기를 꿈꾼다.
- 신수정 .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