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이른봄 - 류시화 - 아직은 이른봄 나는 아직 어둠이 필요해요 스무 날은 더 많은 밤이 그러니 재촉하지 말아요 어서 눈을 뜨라고 차가운 동굴에서 나와 어서 꽃을 피우라고 아직은 몇 날 동안 더 겹겹이 오므리고 있어야만 해요 얼굴 묻고 더 꿈꾸고 있어야만 내 존재는 아마 겹겹이 파랄지도 축축한 흙 속에서 온 감각을 열고 한 촉의 희망을 기다린 자만이 꽃에 대해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너무 이르게 불러내지 말아요 어서 서리의 문을 열라고 어서 언 가슴을 열라고 * Chopin - Nocturne No 20

길 - 마종기 - 길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아직 믿기지는 않지만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들리냐 바닷바람 속살같이 부드럽고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물안개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는냐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거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주위를 지나서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들리냐 * Bandari music Morning Air

하루만의 위안 - 조병화 - 하루만의 위안 잊어버려야만 한다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나는 또 하나 작은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눈을 감으면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잔디밭에 누워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그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그날이 오면잊어버려야만 한다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인사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 소향 - 그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