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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흐르는 강물에 - 김남조 - 내가 흐르는 강물에 구름은 하늘이 그 가슴에 피우는 장미 이왕에 내가 흐르는 江물에 구름으로 친들 그대 하나를 품어가지 못하랴 모든 걸 단번에 거는 도박사의 멋으로 삶의 의미 그 전부를 후회없이 맡기고 가는 하얀 목선 (木船)이다 차가운 물살에 검은 머리 감아 빗으면 어디선지 울려오는 단풍나무의 음악 꿈이 진실이 되고 아주 가까이에 철철 뿜어나는 이름 모를 분수 옛날 같으면야 말만 들어도 사랑은 어지럼 병 지금은 모든 새벽에 미소로 인사하고 모든 밤에 침묵으로 기도한다 내쳐 내가 가는 뱃전에 노란 램프로 여긴들 족하리 이왕에 내가 흐르는 강물에 불빛으로 친들 바람으로 친들 그대 하나를 태워가지 못하랴 * A River Runs Through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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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방 - 허영숙 - 파도의 방 / 허영숙 누구의 손짓에 저 물길 열리고 닫히나무창포에 와서 누운 밤물때를 만난 파도가서로의 산실로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달의 인력에 떠밀려만난 적 없는 듯 등돌려가는 마디마다어떤 울음이 빼곡하기에 걸음이 저토록 질척거리는가멀어진 틈의 간격을 메우며비릿한 물 내를 품고 뜨는 섬질펀한 그 곳에 물고기자리, 조개자리성좌가여기가 다시 무덤인 줄 모르고 몸 던져온다수면에 뜬 아사달의 무늬를 좇아물 속으로 뛰어 든 아사녀의 그림자가이루지 못한 것을 찾아 그믐달 속에 서성이는 밤서로를 떠나서는 그곳이 감옥인 듯 싶었는지이른 새벽 흰빛을 끌고 달려오는물소리, 물소리서로의 내밀한 몸 속으로 혀끝을 밀어 넣으면물결 너머 또 물결이붉은 아침을 저 먼 물금 위에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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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김용택 - 삶 매미가 운다.움직이면 덥다.새벽이면 닭도 운다.하루가 긴 날이 있고짧은 날이 있다.사는 것이 잠깐이다.사는 일들이 헛짓이다 생각하면,사는 일들이 하나하나 손꼽아 재미있다.상처받지 않은 슬픈 영혼들도 있다 하니,생이 한번뿐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숲 속에 웬일이냐, 개망초꽃이다.때로 너를 생각하는 일이하루종일이다.내 곁에 앉은주름진 네 손을 잡고한 세월 눈감았으면 하는 생각,너 아니면 내 삶이 무엇으로 괴롭고또 무슨 낙이 있을까.매미가 우는 여름날새벽이다.삶에 여한을 두지 않기로 한,맑은 새벽에도 움직이면 덥다. * 말매미 - 울음소리